⊙ 자각_자명종 ⊙

[마하리쉬] 깨달음의 실상

몽중래인 2013. 5. 14. 13:06

 

 

 

 

[문] 어떻게 하면 제가 진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 답 ] 깨달음이란 새롭게 얻어지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나는 깨닫지 못했다'라는 생각을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고요함(stillness) 또는 평안(peace)이 깨달음입니다.

 

진아가 존재하지 않는 순간은 없습니다.

 

깨닫지 못했다는 느낌이나 의심이 남아있는 한, 그런 생각들을 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생각들은 자기(진아)를 비진아와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비진아가 사라지면 진아만이 남습니다.

 

물건을 치우기만 하면 빈자리는 그냥 나타납니다.

 

그 빈자리는 딴 데서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 문 ] 깨달음은 원습原習 소멸(vasana-kshaya)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이 원습(vasanas)이 여지없이 소멸되는 그 상태를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까?

 

 

[ 답 ]그대는 지금 그 상태에 있습니다.

 

 

 

 

[ 문 ] 그 말씀은 진아를 착파着把하고 있으면 원습들이 나타나자마자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까?

 

 

[ 답 ]그대가 존재하는 그대로 머무르면, 그것들은 스스로 소멸될 것입니다.

 

 

 

 

[ 문 ] 어떻게 하면 진아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 답 ] 진아에 도달한다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만약 진아에 도달해야 한다면, 진아는 지금 여기 없으며, 획득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새로이 얻은 것은 언젠가 잃게 됩니다.

 

 

따라서 그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영원하지 않은 것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아는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바로 진아이며, 그대가 이미 그것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대는 그대 자신의 지복에 넘친 상태를 모르고 있습니다.

 

 

무지無知(ignorance)가 계속 나타나서 지복 그 자체인 순수한 진아 위에 하나의 막(veil)을 드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릇된앎이라고 하는 이 무지의 막을 제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그릇된 앎이란 자기(진아)를 육체 및 마음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 그릇된 동일시가 사라져야 하며, 그렇게 되면 진아만이 남게 됩니다.

 

 

따라서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가능합니다.

 

 

깨달음은 공부인들간에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자신이 과연 깨달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과,

 

 

'나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라는 생각 자체가 장애물입니다.

 

 

이 장애물로부터도 벗어나도록 하십시오.

 

 

 

 

[ 문 ] 해탈解脫(mukti)에 이르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 답 ] 해탈이란 미래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영원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 문 ] 말씀은 옳습니다만, 저는 그것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답 ] 그 체험은 지금 여기 있습니다.

 

 

누구도 자기 자신의 진아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 문 ] 그것은 존재(existence)를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 답 ] 존재는 행복과 동일하며, 행복은 존재하는 것(being)과 동일한 것입니다.

해탈이라는 말은 상당히 혼란을 일으킵니다.

왜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까?

 

 

그대는 속박(bondage)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해탈을 구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속박이란 없으며 해탈만 존재합니다.

 

 

왜 굳이 해탈이란 이름을 붙여서 그것을 찾습니까?

 

 

 

 

[ 문 ]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무지합니다.

 

 

[ 답 ] 그 무지만 제거하십시오.

 

 

그것이 해야 할일의 전부입니다.

 

 

해탈에 관한 모든 질문들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해탈이란 속박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며, 그것은 지금 현재속박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러나 사실 속박이란 없으며, 따라서 해탈도 없습니다.

 

 

 

 

[ 문 ] 우주 의식(cosmic consciousness)의 섬광을 체험했다고 말하는 서양인들의 깨달음은 어떤 성질의 것입니까?

 

 

[ 답 ] 그것은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섬광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항상존재하고 있는 의식을 깨달았을 때에만 그 깨달음이 영원합니다.

 

 

의식(consciousness)은 실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합니다.

 

 

누구나 '내가 있다'(I am) 는 것을 압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깊은 잠 속에서는 의식이 없지만, 깨어있을 때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똑같은 사람입니다.

 

 

잠자던 사람과 지금 깨어있는 사람 사이에 바뀐 것은 없습니다.

 

 

깊이 잠들었을 때는 자신의 육체를 의식하지 못하므로 육체 의식(body-consciousness)이 없습니다.

 

 

깨어있는 상태(waking state)에서는 그의 육체를 의식하므로 육체 의식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차이는 육체 의식이 나타나느냐 않느냐에 있을 뿐,

 

 

진정한 의식(real consciousness)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육체와 육체 의식은 함께 일어나고 함께 가라앉습니다.

 

 

결국 깊은 잠 속에서는 아무 한계가 없으나, 깨어있을 때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계가 바로 속박입니다.

 

 

'육체가 나'(The body is I)라는 느낌이 착각이며,

 

 

이 거짓된 '나'[가아(假我)] 라는 느낌이 사라져야 합니다.

 

 

진정한 '나'(the real 'I')[진아, 참나] 는 항상 존재합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 나타나지도 않고 다시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that which is)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하며,

 

 

새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깊은 잠과 생시를 비교해 보십시오.

 

 

생시에는 육체가 나타나지만 잠들었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육체는 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은 육체보다 먼저 있었고,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남을 것입니다.

 

 

'내가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육체다'라는 그릇된 생각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며,

 

 

이 그릇된 생각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란 새로운 어떤 것을 얻는 것도 아니고, 새로 생겨난 능력도 아닙니다.

 

 

깨달음이란 단지 모든 위장물(camouflage)을 제거해 버린 그것일 뿐입니다.

 

 

궁극적인 진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그것은 원초적인 상태의 존재(being in the pristine state)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필요한 말의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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